1. 교육과 삶
"교육과 삶이 연계되어 있다."로 부터 출발한 질문이 "삶의 질이다."라는 학생의 답변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만족하는 삶'에 대한 물음으로 나아갔습니다.
마당이 있는 이층 양옥집, 외제차, 부,,,
답변을 들으니, 과연 이런 것을 얻으면 정말 만족스럽고, 행복하다록 생각하게 될까? 그러면 현재 가지고 있지 않으니, 지금은 만족스럽지 목하고 불행한 삶이라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결국, 이런 물음을 이어나가다보면 결국, 수천 년간 철학자들의 고민 -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사는 목적이 무엇인가?,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 에 대한 물음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이루어진 문답으 결코 쉽지 않은 주제입니다. 그래서 삶의 만족, 행복을 쉽게 정의할 수 없을 때 혹은 그것드리 자신과 멀어져있다고 생각할 때, 철학자들의 고민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리고 그로부터 우리와 교사가 가져야 할 자세도 생각해봅니다.
2. 교사가 가져야 할 자세
먼저, 하이데거는 절절하게 행복의 의미를 되집어 보게 합니다.
"행복하려면 죽음을 미리 체험하라."
내일 죽는다고 생각하면 자극적이고 쓸데없는 일을 생각할 수 없게 합니다. 삶 자체가 지루할 수 있을가요? 죽음 앞에서는 사소한 것들은 무가치할 분뿐입니다. 죽음 앞에 불안과 공포를 껴안을 때,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주어진 세계에서 창조의 원리로 - 긍정적으로 다가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삶을 대한다면 하는 일 모두가 행복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 점에서 하이데거가 언급한 "유한한 시간 속에서 절절하게 살아라."에서 '절절하게'는 교수님이 언급한 증자의 "전전긍긍'과 참으로 의미상 맞닿아 있다고 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의 목적을 끊임없이 캐물어보면 완전하고 궁극적 목적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행복'이지요. 그럼 행복은 무엇일까? 외제차, 양옥집의 실체가 아닌 삶의 방식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느냐? 행복하다는 것은 잘사는 것이고, 잘사는 것은 '삶의 행위를 잘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인간의 기능인 이성을 발휘하며 잘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의 습관이 배인 덕 - 중용의 덕으로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중용의 덕은 어떻게 알게 되고 지켜지는 건가? 그것은 마치 신이 되고자 하듯이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불안전한 것만 추구하면 결코 행복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 교수님이 언급한 '인간다움'에 '문명인'과 '신'을 언급함을 떠올려보기도 합니다.
이를 토대로 행복에 대한 삶의 추구로부터 학생인 우리들과 교사가 가져야 할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하이데거로부터는 인간을 의미있는 삶의 주체로서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하루를 보람차게 살도록 하는 원천을 가져다줍니다. 예비교사로서 교과이론 수업에 충실히 하여 내면화 하는 것은 물론이요, 장차 교사로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자극적이고 사소한 무가치적인 것이 아닌 교과 내용에 담간 진정한 가치들을 주려고 노력해야겠지요. 그 시간이 유한하고 제한된 시간인데 현재 학생으로서 딴 짓을 할 수 있겠으며, 장차 교육가로서 분발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학생은 교사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냐에 끊임없는 물음을 가져야 하며, 교사도 신(궁극적 목적)이 되고자 노력하고, 교사의 기능(ergon)이 현실 혹에 투영되도록 끊임없는 실천을 해야겠지요. 이는 분명 교사로서 삶의 방향을 전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교사가 현재 다다른 곳까지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역량이라고 생각한다면 본연의 목적에 다가서도록 더욱 분발해야겠지요.
3. 행복, 교육 그리고 깨달음
이제 책으로 시선을 옮겨 봅니다. 현재 누구에게나 부, 외모, 명예, 건강이 행복인가 아닌가라고 물어본다면, 우리는 완전히 행복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행복 자체인양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유용한 교육, 유목적성 교육, 문제 사태를 해결을 위한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라고 부정할 수 없지만 그 자체가 교육의 근간이자 목적이라는 사고를 하지 말아야 함을 깨닫게 해줍니다.
P.S. 이 글은 2011년 교대생일때 쓴 교육에 관한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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